only sing


    내가 온 맘 바쳐 동경했던 아이돌이 죽었단 소식을 듣는다면 미쳐버리지 않을까?

   수정이를 좋아했다. 저 예쁜 아이는 94년생. 나랑 동갑. 10월 24일에 태어나 내가 중학교 3학년 그러니까 우리가 16살 그 어리던 때에 2009년 9월 5일에 데뷔를 하고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 왔다. 아니 내가 그 애랑 같은 시간 속을 살았다. 아이돌에 관심 없던 내가 일면식도 없는 화면 너머의 누군가를 참 예쁘다고 생각하고, 사랑스러우니 응원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아이가 첫 시트콤을, 음악방송 일위를, 솔로곡을, 드라마를, 연애를, 울음을, 후회를 하는 모습을 지켜 보며. 힘들 때도 있었고 안타까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애를 좋아하며 행복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랬던 것 같다.
   그애는 이 일을 좋아서 한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팬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이었음을. 알고보면 여리고 약한 저애가 나랑 같은 속도로 제 몫의 시간만큼 자라며 건넨 그 애 인생에의 최선의 응원이었음을. 우리에게는 감사였음을. 평생 경험해볼 일 없을 빛나는 그 세계에서 웃고, 예쁘고, 정상을 찍고 같은 업계의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그러다 서서히 가라앉는 소음에 적응하며 그럼에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여전히 해 나가고. 그것이 너무 부러워서 좋고 또 싫고 결국엔 예뻐했다.
   같은 나이인데, 쟤는 이룬 것도 많고 예뻐해주는 사람도 많아서. 생긴 것 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게 나한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가지고 싶다 해도 어찌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까진 어찌저찌 납득 하겠는데 저 애는 너무도 명백하게 나보다 특별한 인간으로 보여서. 나보다 많은 것을 타고난 것 같아서. 세상의 중심에 한번이라도 서 보려면 그런 것들을 꼭 가져야 하는 것 같아서. 외적인 것이 그 애의 음악에까지 매력 요소로 작용해 그애의 노래가 '딱히 특별할 것 없는데도 부당하게 많이' 소비되는 것이 부러워서. 나도 저런 무대에 서 보고 싶어서, 저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마저 계속 오르고자 하게 만드는 무대가 주는 짜릿함을 나도 느껴 보고 싶어서. 타고나길 사랑받을 인생으로 태어난 것이 부러워서.
   그래서 그아이가 가장 많이 사랑받게 되었을 때 놓았다. 여전히 응원했지만  질투도 엄청 많이 했다. 그 때쯤 나는 아마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빛나고 당당하고 사랑받는 직업군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힘들 수도 있단 생각은 못 해봤다. 힘들겠거니 한 적은 있지. 제 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아' 말하며 우는 것을 본 적 있다. 평생 친구일 것이 보장된 나머지 네 명의 멤버들이 있는데 뭐가 그렇게 슬프지? 애초부터 호의를 띄고 다가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건데, 무엇이 저 애를 말 못하도록 만들지? 솔직히 복에 겨운 고민이라고도 생각했다. 철 없었다 아니 지금도 없는 것 같다.
   저 애가 속한 회사의 선배 가수가 죽었다. 자살했다고 한다. 와 말도 안돼, 이렇게 오보이길 바란 기사는 세월호 이후로 없었다. 그 분에 대한 감상은 수정이와 비슷하다. 그렇게 재능이 많은데. 이렇게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데. 그렇게 잘생기고, 잘났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데. 자기 일 직업 사랑한 거 다 아는데.
  얼마나 외로웠기에? 사람의 모든 구차한 실수들은 외로워서 벌어지는데, 구차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구차해지더라도 살고 싶은 마음보다 얼마나 커졌기에? 그러니까, 누구의 말이 그렇게 두려웠기에?
   지금 이렇게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뻔히 사람들이 그래줄 줄을 모르고 바보 같이. 나 같은 사람들이야 혼자라고 느껴질 때 실제로 외톨이여도 저쪽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잖아... 그러면서 불현듯 불안해졌다. 내가 평생을 가도 모를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주는 기쁨 만큼이나 그곳 사람들이 겪는 슬픔이 존재하면 어떡하지.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아서야 어떡하지. 수정이도, 엠버도, 선영이도 토리도 늘 그런 우울을 견디며 살아가는데 나는 그 감정이 정확히 뭔지 몰라서 팬이 되어서 위로도 못 해주는 상황이 오면 어떡하지. 우리가 저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건네는 감정이 실상 전부 화살이고 상처였다면 어떡하지.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은 잊지도 못한다고, 나는 교육학을 배우면서도 포기해야만 했던 노래라는 꿈이 아까워서 때때로 필요 이상으로 흔들거린다. 누군가의 노래를 들어 준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고 그건 내게 가장 큰 형태의 사랑 같아서.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일은 너무 짜릿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요즘은 특히 무대에만 설 수 있다면 못 다 이룬 자아실현이 한방에 될 것 같아서 괴롭다.
  내가 힘겹게 힘겹게 찾아가고 있는 행복이 무대 위엔 있는 것 같은데. 그 행복을 누리다 누리다 넘쳐 버렸을 그 사람도 죽었다. 결국엔 그곳에도 완전한 기쁨은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또 혼란스러워졌다. 영원할 수 없단 걸 알아서 더 이상 연애도 하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보다 힘든 순간이 더 많을 것 뻔해 보여서 결혼도 하고 싶지 않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인생을 살며 겪을 슬픔과 혼란이 내게서 연유한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서 아이를 낳기도 두렵다. 교사가 되는 순간은 아직 내 손 멀리에 있다.
   그럼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아무렴 모든 일이 일장일단이어도 장점만 남아 주는 일은 없는 걸까. 모든 삶이 모든 목표가 결국 그만큼의 슬픔을 수반한다면 우리는 왜 꼭 목표를 이루려 두려워하면서도 나아가야 하는가. 그 사람이 견뎌야 했던 건 결국 그 사람 몫의 인생, 감수성은 재능은 왜 그가 감당 못할 만큼 커서는 독으로 돌아왔어야 했는가.
왜 꼭 착한 사람들만 죽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 때도 나는 실감이 나질 않아 병원 근처에만 가면 반가웠는데. 이렇게 많은 노래로 가사들로 남은 사람이, 버튼만 누르면 언제든 그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많은 걸 남겨 놓은 사람이 정작 여기에 없다니. 이것이 비단 그사람만의 문제일리 없다니.


  이 블로그 제목은 pink tape다. 수정이가 세상에 보여 주었던 사랑스러움과 분리될 수 없는 이름이다. 그만큼 내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준 내 유일한 아이돌, 수정이. 그 애로 연유하여 알게 된 감정들이기에 응당 이곳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내가 가장 '아름답다' 고 생각했던 수정이 화보. 보그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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